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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동(서울대 강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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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농촌통제정책(제30권, 제31권, 제32권)
1933년에 시작된 농촌진흥운동은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38년부터는 농·산·어촌 보국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전시체제로 전환하면서 농촌진흥이라는 목표를 생업보국, 즉 애국을 전면에 내걸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전개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은 근로증진과 증산 및 생활 쇄신을 목표로 내걸고 호별지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1940년 10월
이래 국민정신총동원운동과 합쳐져서 국민총력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41년부터는 농업의 생산력 증강을 내걸면서 부락
단위의 생산 확충에 중점을 두어 유축농업의 보급, 자급비료의 증산, 미간지 개발 등에 의한 식량의 증산확보, 특용작물의
증산 등을 계획생산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농촌노동력의 강제동원이 강화되면서 농촌통제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어갔다. 이에 따라 전시의 국민생활, 특히 농촌의 생활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자 하였다.
이제 각 권별로 자료의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제30권에는 朝鮮總督府, {生業報國講習會速記錄1回--附 感想錄}(1939)이라는
자료를 편집하였다. 농촌진흥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생업보국강습회에서 행해진 강연 자료와 강습회에 참여했던 농촌지도자들의
감상록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1938년부터 변화하고 있던 농촌진흥운동의 전시체제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제31권에는 전시의 농촌생활과 관련된 자료를 편집하였다. 모두 네 가지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는데, 1) 三木弘,
{赫土에 그린다}(1941, 綠旗聯盟), 2) 生活科學社, {國民生活論叢} 1-4號(1941-1943), 3) 黃海道
農政課, {戰時農民讀本}(1943), 4) 三井卓治, {戰時下 緊急한 生活施策 硏究에 關한 意見書}(1944)가 그것이다.
첫번째 자료는 조선인이 전시생활을 설계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을 의식주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각 부분에
대하여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의복으로는 색채와 디자인을 노동하기에 쉽고 편한 것으로 하기 위하여 이른바 '국민복'을
만들어 입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식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조선인은 주식의 섭취가 과다하기 때문에
부식을 많이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음식물의 낭비를 막기 위하여 많이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식사 예의작법을 일본식으로 고칠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주거생활도 일본식과 절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생활과학사에서 간행한 4개의 팸플릿으로 이루어진 {국민생활논총} 역시 각 부문에 걸쳐 전시생활에 적합하도록
생활을 변화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쟁하의 국민생활은 흡사 포위된 요새지 주민이 무력의 압박과 궁핍 아래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입장이므로, 필승을 기하기 위해서는 전시의식을 앙양하고 국민생활의 실체에 대하여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식량을 절약하는 방법, 부족한 주식을 대체할 수 있는 잡곡과 구황식물을
이용한 식사법, 의복과 주택을 개량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자료 역시 전시하 농민의 생활에 필요한 길잡이로 발행한 자료인데, 농업의 각 분야에 대한 해설과 권장사항을
수록하고 있다. 네 번째 자료는 1944년에 나온 자료로 더욱 긴급해진 전시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로서, 연료의
절약과 유령인구의 정리, 식량과 물자의 배급에 관한 사항을 수록하고 있다.
제32권에는 朝鮮總督府 農林局, {農繁期 託兒所開設의 길잡이}(1942)라는 자료와 농업보국대에 관한 두 개의 자료,
즉 朝鮮總督府農林局農政課, {農業報國靑年隊記}(1942)와 {皇農에의 길-朝鮮農業報國靑年隊記}(1943)라는 자료로
구성하였다.
일제는 1930년대 초반부터 부족한 농촌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성 노동력의 사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었지만,
전시체제기 농촌 노동력의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농촌 여성 노동력의 사용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출하고 있다.
공동취사, 공동육아와 같이 여성 노동력 사용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가사노동의 부족을 메꾸기 위하여 부락단위의 공동노동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 자료는 공동육아에 관한 자료로서 농촌 탁아소 개설을 위한 길잡이로 발행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자료를 통하여
탁아소 개설의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다음 자료는 농업보국청년대에 관한 자료이다. 농업보국청년대는 조선의 농촌 청년들이
일본 본국의 농촌실태를 파악하고 영농법의 실제를 체험함으로써, 자질을 鍊成하고 내선일체를 구현하며 농업생산력의 증진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농촌의 중견 청년들을 일본 본국의 농촌에 한 달 동안 파견하여 노동하도록
한 제도이다. 곧 농촌의 중견 청년들로 하여금 본국의 농촌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업보국, 즉 애국을 통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연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며, 이는 중견인물 양성의 다른 방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운동의 전개와 관련된 자료는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하고, 이 시기 진흥운동의 성격변화와 관련해서도 많은 자료가
있지만, 이번에는 위의 자료로 만족하고 남은 자료는 이후 간행할 자료집에서 새로 편집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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